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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문화] 기억을 지키려는 건축가들_도시는 건축을 보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2025년 12월 1일

일시 2025년 11월 12일

장소 제주 서귀포 라바르 카페

참석 현군출 (대한건축사협회 제주특별자치도 건축사회 회장)

박경택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 회장)

김성진 (제주한라대 교수, 대한건축학회 제주지회 회장)

강명숙 (건축사사무소 시오 대표)

강정윤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고성천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시유재 대표)

김병수 (빌딩워크샵 건축사사무소 대표)

김지건 (아뜰리에 지_건축 대표)

이창규 (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박지일 (월간 건축문화 편집장, 진행)

사진 박영채



도시의 풍경은 늘 건축보다 빠르게 변한다. 그러나 어떤 변화는 속도나 필요의 문제가 아닌 도시가 스스로의 시간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질문이 된다. 서귀포 관광극장의 철거는 바로 그런 순간이다. 한 시대를 증언하던 건축물의 철거 위기 앞에서 앞에서 건축가들은 단순한 유감이나 회고가 아닌 문제의식을 꺼내 들었다. 서귀포 관광극장은 일반적인 기능적 건축물에 그치지 않았다. 도시가 지나온 시간을 품은 장소이자, 지역의 문화적 기억을 담아온 흔적이었다. 그럼에도 이 건축은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철거가 결정됐고 그 과정은 충분한 공론화 없이 행정의 논리로 빠르게 진행됐다. 건축가들의 문제제기는 한 건물의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다. 지역의 건축적 판단은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또 기억과 장소, 역사와 건축의 관계는 개발과 행정의 언어 속에서 어떻게 소거되고 있는지가 핵심적인 질문이다.

이번 라운드테이블은 철거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모으기 위함이라기 보다, 오히려 이 사건이 드러낸 공백, 즉 도시가 무엇을 기억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건축가들의 문제의식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서귀포 관광극장의 철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의 시작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행정적 판단의 검토가 아닌 지역 건축을 바라보는 태도와 기준을 다시 짓는 일이다. 이번 사라짐이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또 다른 반복의 전조일 수 있다는 사실은 건축가들을 이 논의의 장으로 불러낸 까닭이다.

사라진 건축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건축이 남긴 질문은 지금부터 새롭게 세울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앞으로 제주 건축 문화의 수준과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서귀포 관광극장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강명숙(이하 강): 서귀포 관광극장은 1960년대 사용승인을 받아 1963년부터 운영된 제주 최초의 근대식 영화 상영 전용 극장이다. 전면부는 2층 철근콘크리트 구조이고, 실제 상영 공간은 폭 13.8m, 높이 9m 규모의 현무암으로 쌓아 올렸다. 시간이 지나 지붕이 소실되면서 지금은 노천극장에 가까운 독특한 공간감을 형성하는데, 폐허를 연상시키는 이 분위기마저 사람들에게 강한 감응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다. 영화계에서도 의미가 있는 극장이고, 건축적으로 보더라도 흔치 않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근 돌을 쌓는 장인, 이른바 ‘돌챙이’와 인터뷰를 했는데 9m 높이까지 돌을 쌓는다는 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노동과 고난의 집약이라고 말하더라. 서귀포 관광극장은 당시의 돌, 그 돌을 다루던 기술, 그걸 감당하던 인력과 환경이 모두 합쳐져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지금은 그렇게 못한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만한 노동과 시간을 들여 돌을 쌓을 사회적 조건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서귀포 관광극장은 65년 넘는 시간과 과거의 기술·재료가 집약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시간이 쌓인 건축물을 끝까지 잘 지켜서 앞으로 35년만 더 버티면 100년이 된다. 제주 고유의 100년 건축으로 기억될 수 있는, 흔치 않은 사례가 될 수 있음에도 지금 이 이 시점에서 시간의 흐름을 끊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건축이라는 것만으로는 존치의 당위성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고성천(이하 고): 서귀포 관광극장은 문화적 의미도 있지만 조금 더 나아가 보면 서사적 의미가 쌓여가고 있던 장소이자 건축이었다. 지어졌을 때를 1기로 보면 근대식 영화관으로 기능했고, 2000년대 들어 한동안 사용되지 않으면서 지붕이 무너지고 방치된 2기의 시간이 있었다. 2015년 무렵부터는 지붕 없는 야외 공연장으로 재탄생하면서 3기를 맞이했다. 그 이후로 다양한 공연과 버스킹, 문화행사가 열리는 문화시설로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이제 이중섭미술관이 새롭게 건축되면서, 관광극장은 3기의 연장선에서 4기를 맞이할 타이밍에 서 있었다. 이중섭미술관과 잘 어우러진 문화공간이 될 수 있었는데 일부가 철거 된거다. 4기, 5기까지 바라볼 수도 있는, 우리의 문화와 삶이 적층되어가던 소중한 공공자산이었다. 이런 건축은 시간이 쌓일수록 더 서사화되고, 삶이 묻어 나며 추억은 켜켜이 쌓인다. 크게 보면 제주의 소중한 문화자산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지켜야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서사적 요소들이 누적되어 더 좋은 우리의 유산이 될 수 있었다.


김병수(이하 병): 건축적인 가치와 외적인 가치 두 방향에서 모두 의미가 있다. 제주도는 오래된 건물의 보존을 위한 건축자산조사를 진행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후대에 남겨야 하는 건축 리스트를 작성했다. 서귀포 관광극장은 그 조사에서 이미 우수 건축자산 후보로 올라가 있었고, 이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진행 중이었다. 건축적 가치는 행정적으로도 이미 한 번 인정받은 셈이다. 또 제주 건축가협회에서 2014년부터 제주의 지역성을 담은 건물을 발굴해 제주다운 건축상을 수여하고 있는데, 서귀포 관광극장은 2021년도에 ‘제주다운 공공성’을 주제로 한 선정에서 제주다운 건축상을 수상했다. 실제로 제주의 공공건축물 중, 서귀포 관광극장만큼 도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자주 찾아가는 공간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이 공간을 유지하고 후대에도 계속 사랑받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었다. 이미 잘 쓰이고 있고, 앞으로 더 잘 쓸 수 있는 건축임에도 왜 없애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 이유다.


김지건(이하 건): 나는 서귀포 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서귀포 도시의 발전을 보면 바다에서부터 한라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발전 과정임을 파악할 수 있는데, 요즘 말하는 원도심은 초기 형성 과정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중요한 장소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 대해 건축계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 학창시절 친구들, 서귀포를 떠나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까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응원한다”, “이건 아니지 않냐”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을 정도다. 그 까닭은 서귀포 관광극장과 그 주변이 현재 원도심의 시대정신을 유일하게 담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60년대 서귀포의 시대상, 그 분위기와 기억이 연계해서 이어지는 장소가 대부분 여기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이곳이 사라지는 건 단지 오래된 건물 하나의 소멸이 아니라 ‘서귀포’라는 도시의 중요한 시대 기억과 정체성이 사라지는 일이다.


박경택(이하 박): 이중섭미술관, 이중섭 생가, 그 뒤편의 서귀포 본향당, 과거 일제 신사가 있던 자리의 정방동 주민센터까지, 이 일대는 여러 층의 역사가 겹쳐 있는 축이다. 서귀포가 역사성을 가진 도시로 남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시간은 결국 이런 근대 건축과 전통 공간들이 한 덩어리로 존재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좋은 미술관 하나로는 도시의 역사적 상징성이 완성되지 않는다. 서귀포 관광극장은 그 축을 이루는 한 조각이었고, 하나가 사라질 때마다 다시 50년, 60년의 시간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강정윤(이하 강): 사실 수많은 근대 건축물 중에서도 관광극장은 ‘잘 사용되고 있던 공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방치된 공간이라면 의미가 많이 퇴색했을 수 있겠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제주와 아무 관계가 없는 관광객도, 서귀포 시민도, 이주민도 이 공간에서 공연과 문화예술을 즐겼다. 그만큼 잘 쓰이던 공간이 갑자기 무너져 버린 상황을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 못한다. 보존과 재생에 대한 건축적인 논의, 사회적인 논의가 선행됐어야 했다. 이 건축을 어떻게 남기고, 어떻게 쓰고, 어떻게 재해석할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충분한 논의나 어떤 공론화 과정도 없이 그저 무너져 버렸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다.



새롭게 조성될 이중섭 거리, 이중섭 생가와의 관계 속에서 서귀포 관광극장은 어떤 위치였나?


병: 이중섭 거리의 공간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중섭 생가(라고 불리는 곳), 다른 하나가 서귀포 관광극장이다. 이 두 요소가 거리 양 끝에서 공간적 특성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무너진 것이다.


택: 서귀포 관광극장은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간이다. 새롭게 건립될 이중섭미술관이 작품성과 전시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하더라도, 이 일대의 본향당을 비롯해 과거 신사 터와 함께 이어지던 역사적 축 중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이 지역이 역사적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단지 몇 개의 문화시설이 아니라, 이러한 축들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 거리가 가진 상징성은 좋은 미술관 하나로 해결될 수 없으며, 문화재적 성격을 가진 공간들이 층위처럼 공존하고 서로 관계를 맺으며 비로소 의미가 형성된다. 서귀포 관광극장은 바로 그 축의 한 요소였다.


고: 개인적으로는 ‘이중섭 생가’라는 명칭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본다. 물론 이중섭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가 서귀포에 머문 시간은 11개월 정도에 불과하고, 지금의 생가는 원형이 아니라 재건축한 초가집이다. 반면 서귀포 관광극장은 65년 이상 서귀포 시민들의 문화가 적층된 건물이다. 둘은 애초에 비교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둘이 양립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둘 다 양립할 수 있었다. 이중섭 거리 전체를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형성하고 적거지(생가), 새 미술관, 서귀포 관광극장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복합적인 문화공간이 되었어야 했다. 서귀포 관광극장이 큰 구조물도 아니고, 규모가 부담되는 건축도 아니다. 같이 어우러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쟁 관계로 만들어버리고 철거를 계획한 것은 정말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서귀포 관광극장의 철거를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현군출(이하 현): 건축3단체(대한건축사협회 제주특별자치도 건축사회, (사)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 (사)대한건축학회 제주지회)회장단이 모여서 철거반대에 대한 성명을 내고 행동을 같이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제주의 근대 건축물 중에는 건축물의 노후화 그리고 안전에 대한 문제 등으로 철거되어, 우리의 기억속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제주대 본관, 구)제주 시청사, 현대극장 등 비교적 잘 알려진 건축물도 같은 이유로 철거됐다. 행정을 향한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뿐 아니라 도민 사회에도 경종을 울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건축물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없애버리기로 결정할 때,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철거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건축 전문가로서 건축적 가치만을 주장하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건축물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논의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늘 대안을 제시해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 행정의 생각이 어떤지, 진심으로 대안을 받아들일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런 까닭에 대안을 만들고 제안한 이후가 더 힘든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지난한 과정을 누가, 언제까지, 어떤 동력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 솔직히 두려움이 있다. 이번 기회에 의미 있는 한 획을 그어보고 싶다. 향후 똑같은 과정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행정의 판단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고 싶고, 본보기로 남기고 싶다.



최근 논쟁이 있는 서울 세운상가 재개발 사업처럼, 인근 상인들의 생각은 조금 다를 것 같다.


현: 상인들의 접근은 다르다. 서귀포 관광극장을 철거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새로운 시설이 상권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행정 주체가 그들에게 어떤 청사진을 보여 주었는지 궁금하다. 내가 아는 바로는, 행정 주체가 철거 후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 같다. 지역 주민 그리고 상인들이 우리 단체와 대척점에 서 있고, 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우리 모두가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행정 주체가 제대로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건: 찬성 측 단체와 두 차례 회의한 적이 있다. 그들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시설의 열악함(화장실·탈의실 부재, 낙석, 노출로 인한 음향 민원 등), 다른 하나는 새로운 공연시설에 대한 막연한 기대다. 행정 주체는 여러 민원을 받았을 때, 전문가와 공공건축가 제도 등을 통해 함께 개선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시민에게 정보 전달이 ‘철거를 전제로 한 계획’에 맞춰져 있는 듯한 점이다. 실제 행정 주체는 시설이 열악한 만큼 철거하고 새로 짓자는 이분법적 자세에 가까웠던 것 같다. 해당 의견이 타당한지 확인을 위해 안정성 검토나 보강 방안에 대한 자료가 시민들에게 제공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청과 구조안전진단 업체가 위험 판정을 내리면, 일반 시민은 대응할 수단이 없다. 그래서 반대 측 시민들은 공공건축가나 지역 건축사를 불러 공정한 논의를 하자고 요구했지만, 그런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다. 철거가 정당한 여론 수렴 과정으로 형성된 것인지, 정말 다양한 방안을 검토한 끝에 선택된 것인지 의문과 아쉬움이 남는다.


고: 행정 주체는 상인들에게 ‘개축’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시설이 불편하니 철거하고 더 좋은 공연장을 지어주겠다는 식이다. 서귀포시가 관광극장을 매입하면서 어떤 계획을 가졌는지 알 수는 없으나, 공공이 매입한 순간 이 건물은 시민의 재산이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잘 쓸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행정 주체가 처음부터 보존·활용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구조안전진단에서도 보강해 활용하는 방안을 명시했음에도, 행정 주체는 철거 쪽으로만 주도해나갔다. 이는 서귀포시의 문제를 넘어, 도(道) 차원의 행정문화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안전’과 ‘경제성’ 논리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강: 현재 남은 구조물은 65년을 버텨온 석조와 철근콘크리트조가 결합된 구조다. 돌챙이의 증언에 따르면, 돌담을 쌓고 그 뒤에 강자갈을 섞은 콘크리트를 부어 일종의 복합 조적 구조물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철거할 때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철거된 구간이 아닌 남아 있는 다른 벽에는 새로운 균열이 거의 없다. 현대 기술로 이 벽을 보강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조적 보강, 와이어 삽입, 내부에 철골 브레이스를 세워 버팀 구조를 형성하는 등 여러 대안이 있다. 공사비 부담은 있겠지만 소중한 건축자산 보존을 위해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라고 보는 편에 가깝다.


윤: 보존의 패러다임도 바꿀 필요가 있다.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만이 아니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가 중요해진 시대다. 영국의 테이트 모던처럼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무너진 지금의 상태와 보강의 흔적을 드러내며 잘 쓰이면서도 곱게 늘어가는 건축을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건축가들이 새로운 쓰임을 덧씌우는 데만 집중하기보다, 무엇으로 건물을 기억할 것인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대로 두는 방식, 최소 개입으로 지키는 방식, 부분 재건과 기록을 병행하는 방식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이번 사태가 그런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기점이 되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서귀포 관광극장의 보존·활용 대안은 무엇인가


병: 핵심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남아 있는 건물을 구조적으로 안전하게 만드는 방안, 두 번째는 시민의 요구를 반영한 사용 시나리오를 단계적으로 설계하는 일이다. 현재 건축 3단체는 구조 보강을 통한 건물의 안전 유지를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강: 행정에서는 제주건축3단체가 보존·활용방안을 제시하고 검토 후 공론화를 하자는 입장이다. 지금은 우리가 제시하는 방안이 공론화의 첫 단추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12월 12일 ‘제주건축포럼’에서 보존·활용방안과 모형을 공개하고 이것이 단지 아이디어 수준이 아니라 실행가능한 결과물임을 시민들에게 설득하려 한다.


현: 행정에서 공론화를 회피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나름대로 공론의 장을 마련하려 한다. 세미나와 포럼을 통해 보강안과 활용방안에 대한 생각을 모아볼 요량이다. 행정에는 시민, 상인, 공연 및 예술계, 건축 전문가 등이 함께하는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는 중이다. 이러한 행동이 제2, 그리고 제3의 서귀포 관광극장 사태를 막기 위한 선례가 되기를 바란다.



건축이 자생하기 위해서는 콘텐츠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없나?


윤: 건축적으로 어떻게 고칠 것인가만큼, 건물이 자기 힘으로 살아남게 할 콘텐츠 전략도 필요하다. 포럼을 계획할 때 군산에서 근대건축을 잘 재생한 손진 건축가, 힐튼 서울 자서전을 기획한 정다영 디렉터, 그리고 공간의 사용과 연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탁현민 교수까지 세 축을 의도적으로 구성했다. 보존, 태도, 콘텐츠를 동시에 논의하기 위한 구성이었다.


고: 서귀포 관광극장은 애초에 ‘버스킹형 공연장’에 가까운 장소였다. 완벽한 음향과 백스테이지를 갖춘 콘서트홀이 아니라, 하늘이 열려 있고 담장으로 둘러싸인 열린 무대였다. 그 특성을 인정하고 버스킹과 실험 공연, 지역축제의 장으로 기획하는 편이 타당하다. 탈의실과 음향, 화장실 등 필요한 최소한의 지원 시설은 주변에 보완하는 방향도 고려할 수 있다. 공간에 맞지 않는 ‘완벽한 공연장’의 기준을 들이대는 순간, 이 장소의 고유한 매력은 사라진다.


건: 우리가 꿈꾸는 것은 백건우 같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이곳에서 연주하는 장면이다. 실제로 그는 남해안 작은 포구에서도, 산불 피해 지역에서도 아무 시설 없이 피아노를 가져가 연주한 적이 있다. 그런 공연이 가능하다면 서귀포 관광극장은 제주를 넘어 세계적인 ‘장소성’을 가진 무대로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물리적 보강과 장기적인 문화 기획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번 사태가 드러낸 제도적 한계는 무엇이라고 보나


고: 한마디로 말하면, 행정 주체는 처음부터 보존과 활용에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2021년쯤 이중섭미술관 신축 계획이 잡히고 예산이 편성되었을 때, 공공건축가로서 자문한 경험이 있다. 당시 원소유자는 민간이었고, 시는 위탁 운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일대 전체를 공공문화거리로 조성하면 좋겠다고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당시 시는 건물을 매입하려 했으나 협상에 어려움을 겪었고, 시간이 지나 결국 시에서 매입에 성공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건물을 공공시설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공공의 공익적 재산이 되었다면 시민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애초부터 철거를 전제로 매입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서귀포시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제주도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도에서 결정되는 게 많고 시는 권한이나 힘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규정과 절차에 의해 움직이는 공무의 특성상, 행정이 문화적 의식을 갖지 못하면 단기적이고 숫자로만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투 트랙이 필요하다. 하나는 규정과 제도를 통해 자치단체장이 함부로 공공자산을 다루지 못하게 제한하는 것, 다른 하나는 민간에서 중요한 건축물들을 시와 의논해 함께 보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조례 개정을 통해서 행정에서 문화유산을 유지, 관리하도록 해야 하며, 도정이나 시정에 따라서 우리 문화유산이 흔들리는 구조는 결국 모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택: 건축자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되어 있지만, 예산 편성을 의무화하는 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현재는 건축자산 목록만 구축된 상태로, 실제 보존과 활용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구조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법과 조례의 개정까지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나?


김성진(이하 성): 우리의 목표는 결국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 가능하면 기존 건축물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다. 삶의 목적을 만족시키는 공간이 필요하다. 극장은 그런 역할을 오랫동안 해온 장소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과 책임감을 느낀다. 시간을 놓쳤다는 점에서 그렇다. 철거되기 전에 먼저 움직이고, 애정을 보이는 등, 보존을 위한 애착이 평소에 더 강하게 드러났다면 실제 철거라는 현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 설령 앞으로 우리가 좋은 대안을 내서 복원을 하더라도, 이미 한 번 무너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제2, 제3의 관광극장이 나오지 않도록 연구하고 성찰해야 한다. 복원이 잘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면, 떨어져 있던 돌, 무너져 있던 원형을 다시 쌓을 때 치수화 등을 통해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다. 물리적인 모형이나 디지털 모델로 1차적인 기록을 남기고, 그 위에 어떤 콘텐츠를 담을지, 어떻게 원형을 유지하면서 다음 세대에 넘겨줄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결론은 결국 시간과 냉정함이다. 잘 배웅하는 것이 아닌, 마지막까지 지켜야 한다는 게 최종 목표다.


현: 지킨다고 해도 문제는 결국 예산인 것 같다. 서귀포시는 활용방안 도출에 대한 계획도 내년 예산으로 진행하는 상황이다. 우리 TF팀에서 진행하는 보강방안을 통해 시설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대략 20억 내외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현재 서귀포 관광극장 구조안전진단 등급은 E등급으로 당장 보강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중섭미술관 공사는 계속해서 진행이 되고 있고, 안전에 대한 문제로 인해 보강은 반드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행정에서의 대응은 안전을 위해 가장 경제적인 방안인 철거라는 인식으로 임시조치만 하고 있는 것 같아 지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건: 예산과 관련해서는, 행정부의 의지가 아예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시민들의 여론만 조금 더 조성된다면 무엇이든 해보려는 분위기도 있다. 예산을 시에서 조달하기 어렵다면, 시민들과 함께 풀뿌리 모금 활동, 펀딩 등을 통해 보강 비용 일부를 마련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이제는 그 정도 상상력도 필요하다.



건축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등의 아카이빙에 대한 고려도 하고 있는 듯하다.


윤: 힐튼 호텔 사례를 보며, 좋은 기록을 기반으로 한 전시를 통해 정중하게 배웅했다는 인상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아카이빙에서 끝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전시 말미에 아카이빙이 갖는 한계, 무력감에 대한 언급에도 공감이 됐다. 과연 우리는 그 무력감을 넘어서기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래서 더더욱,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최소한 잘 기록해서 잘 보내주는 방식을 고민하는 동시에 그렇게 되지 않도록 최대한 버티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 현재 무너진 상태, 무자비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남기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건축물은 살아있어야 하고, 계속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쓰이지 않으면 죽은 건축물이다. 현재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힐튼서울 자서전’ 전시가 건축물의 생애를 마감하는 ‘건축 장례식’이었다면 지금의 서귀포 관광극장은 아직 죽지 않았으며 다친 서귀포 관광극장의 병문안을 가듯 우리는 그 자리에 서 있다. 어떻게든 잘 살려서 잘 쓰이도록, 그리고 지금의 노력이 기억될 수 있는 방식을 찾고 있다.


윤: 그래서 포럼 연사를 초청할 때도 근대 건축물을 잘 활용한 사례를 가진 사람들, 건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태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콘텐츠의 관점에서 건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의도적으로 초청하려 한다. 행정의 한 트랙, 시민의 의식 수준이라는 한 트랙, 건축가들의 실무적 갈래가 서로 엇갈리지 않도록, 포럼과 강연을 잘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공건축가 제도에 대한 이해와 건축가들의 역할에 대한 교육도 같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함께 들을 수 있는 건축 강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공부의 장이 병행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일까?


고: 서귀포에는 좋은 선례가 있다. 김중업 선생의 ‘소라의 성’이다. 절벽 위 재해위험지구에 있어 시가 매입 후 철거하려 했지만, 시민단체 등의 활동을 통해 결국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서귀포 관광극장도 어떻게든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한옥 등 건축자산법을 활용해서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본다.


병: 서귀포 관광극장을 향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도정과 시민 사이에 전혀 다른 견해들은 어쩌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이 건물을 낡고 쓸모없는 건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건축이 정말 가치 있는 유산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목소리를 통해 행정과 정치도 이 건축의 가치를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실패하더라도 우리의 노력과 시간이 이후 다른 사태가 벌어질 때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이런 논쟁이 있었다는 것, 어떤 회환이 남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될 거다. 지금 우리는 제2의 관광극장을 지키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이창규(이하 규): 이 모임이 중요한 까닭은 분명하다. 까사 델 아구아, 제주대 본관이 철거되는 과정을 보면 건물의 가치에 대한 담론이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도 언급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제주 건축 3단체가 직접 지켜내고자 하는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여기 모이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강: 2015년부터 서귀포시가 무상임대하여 문화공간으로 잘 쓰이고 있다가 2023년 매입 후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철거가 결정됐고 일부 철거가 진행됐다. 그렇게 보면 서귀포 관광극장은 2년만의 철거 수순을 밟게 된 참으로 불쌍한 공공건축물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제주건축 3단체가 함께 모이고 TF팀이 결성되어 보존과 활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 이런 라운드테이블과 포럼을 준비하는게 늦었지만 의미 있는 시작이라고 믿는다.


현: 중요한 건 시간과 냉정함이다. 아직은 철거가 완전히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믿고, 보존을 위한 행동을 하는 것과 더불어 앞으로 장기적으로 이끌고 나갈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번에 우리의 노력과 기록 그리고 법 개정요구, 시민과의 대화 등의 공론화 과정이 훗날 “서귀포 관광극장 보존 행동부터 제주가 바뀌기 시작했다”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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